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홍콩 영화 (문단 편집) === 1970년대 === 흔히 1980년대를 홍콩 영화의 최전성기라고 꼽는데 흥행으로 생각하면 맞는 말이지만, 홍콩 영화인이나 평론가들 중엔 1960~1970년대 홍콩 영화를 최전성기로 꼽는 사람들도 있다. [[장철(1923)|장철]]감독이나 검술무협영화의 선구자인 [[호금전]] 감독, 홍콩 액션스타의 시발점이 되는 그 유명한 [[이소룡]] 같은 이들이 가장 활발하게 활약하던 시절이기 때문이다. 특히 70년대는 홍콩 영화의 고유장르였던 무협영화가 현대 무술물로 진화하기도 하고, 무술물에서 벗어난 여러가지 장르도 나오기 시작한다. 1989년에 창간했던 영화 월간지 로드쇼에서도 이런 분석을 보이며 1989년 당시에는 홍콩 반환이 겨우 8년 남겨둔 상황에 불안하다. 머지않아 홍콩영화 붕괴라는 결과가 나올지 모른다는 예언같은 분석을 보이기도 했다. 로드쇼는 홍콩영화 분석 및 성룡을 초청하는 등, 홍콩느와르라는 말을 널리 알리던 곳이었다. 쇼브라더스의 맹위 때문에 1960년대 후반부터 몰락하였던 광동어 영화의 인기는 [[이소룡]]과 [[허관문]], [[허관걸]] 등의 슈퍼 스타의 등장으로 다시 부흥하기 시작하였는데, 아이러니한 점은 이소룡은 원래 쇼브라더스와 합작을 하려 했었지만, 돈문제로 인해 쇼브라더스에서 갈라져 나온 골든하베스트와 협력하게 되었고, 이는 허관문도 마찬가지였다. 광동어 영화 시장은 [[성룡]], [[홍금보]] 등의 스타 배우들이 계속해서 등장하였고, 광동어 텔레비전 방송국 [[TVB]] 연기반에서 키워낸 연기력이 출중한 광동어 연기자들이 영화계로 진출하기 시작하면서 더욱 흥하게 된다.[* 이렇게 TVB 연기반 출신 배우들은 홍콩 영화계의 뼈대이다. 주윤발, 주성치, 양가휘, 유덕화, 양조위, 오군여, 유가령 등 이고, 무술계 액션배우나 가수가 아니면 대체로 십중팔구는 TVB 탤런트 출신이다.] 이 당시는 천편일률적인 무협 영화를 벗어나서 코미디극도 나오기 시작한다. 허관문-허관걸-허관영 형제들의 막가파 개그물의 효시인 《귀마쌍성》(鬼馬雙星)도 이 때(1974)에 나왔다. 이와 함께 현대적인 무술영화도 제작되기 시작한다. 이 것을 주도한 영화사가 바로 1970년에 [[추문회]]가 설립한 골든하베스트사이다. 골든하베스트사는 할리우드에서 단역이나 조연만을 맡으며 푸대접을 받던 [[이소룡]]을 홍콩으로 불러 주연으로 삼아 여러 현대 [[중국권법|쿵푸]]물을 제작하며 대스타로 만들었고, 그런 와중에 골든하베스트사도 홍콩의 거대 영화사가 된다. 1973년 이소룡이 요절하자 잠시 주춤하긴 했으나, [[성룡]]을 발굴하여 1980년대 대성공을 거둔다. 이와 함께 한국에 잘 안 알려진 에로물(속칭 3급편)도 이 당시부터 쏟아져나오기 시작했다. 가정용 비디오가 보급되기 전이기 때문에 이런 영화도 극장에 걸렸기 때문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